13년째 한 회사를 다니면서 여러 부서를 거쳤지만, 어디를 가든 똑같이 부딪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. 바로 "업무 기록이 한 곳에 모이지 않는다"는 거였어요. 작은 회사일수록 이 문제는 더 크게 느껴집니다. 사람도 부족하고, 시스템에 들일 수 있는 예산도 한정적이니까요.
바꿔도 바뀌지 않는 것
저희 회사는 지금까지 그룹웨어와 ERP를 몇 차례 바꿔왔습니다. 새로운 솔루션으로 옮길 때마다 "이번엔 다르겠지"라는 기대를 안고 시작했지만, 결국 비슷한 지점에서 한계를 느끼곤 했어요. 이번에는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더존 그룹웨어와 영림원 ERP로 전환했습니다. 이름값만 보면 웬만한 업무는 다 커버될 것 같았죠. 그런데 막상 써보니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늘 한 끗이 아쉬웠어요. 큰 기업을 기준으로 설계된 솔루션이다 보니, 저희 같은 작은 조직의 디테일한 업무 흐름까지 세심하게 맞춰주지는 못하더라고요. 우리 팀에 딱 맞게 기능을 개선하고 싶어도, 그 업데이트 비용이 또 발목을 잡았습니다. 결국 지금 있는 기능 안에서 어떻게든 활용법을 찾아 쓰다 보니, 효율은 늘 제자리걸음이었어요. 솔루션을 몇 번이나 바꿔봐도 이 패턴이 반복되니까, 어느 순간 "이건 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업무 방식에 맞는 도구가 따로 필요한 게 아닐까"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. 돌이켜보면 저희는 늘 "더 큰 솔루션, 더 비싼 솔루션이면 해결되겠지"라고 막연히 기대했던 것 같아요. 하지만 정작 필요했던 건 거창한 기능이 아니라, 우리 팀의 자잘한 업무 흐름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주는 도구였습니다. 솔직히 매번 새 시스템을 도입할 때마다 적응 기간 동안 업무 효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도 감수해야 했는데, 그 수고에 비해 돌아오는 변화는 크지 않았던 셈이에요. 그런 시행착오가 쌓이면서, 외부 솔루션에 기대는 대신 다른 방향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습니다.
출장 다녀오면, 기록은 늘 뒷전
특히 출장이 잦은 파트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드러났습니다. 출장 다녀와서 녹초가 된 상태로 자리에 앉아 하루 일과를 꼼꼼히 기록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.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게 당연한데, 그러다 보니 업무 이력이 누락되는 일이 잦았습니다.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. 업무 지시는 카톡, 메신저, 메일로 제각각 흩어져 있다 보니, 나중에 "그때 뭐라고 지시했더라" 하고 이력을 찾으려면 세 곳을 다 뒤져야 했습니다. 급하게 확인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 시간 자체가 또 다른 업무 손실이 됐어요. 보다 못해 엑셀로 일괄 관리를 해보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. 하지만 그걸 전담해서 챙길 관리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, 며칠 못 가 입력이 끊기고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됐어요. 결국 "관리해야 한다"는 부담만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습니다. 더 답답했던 건, 이런 비효율이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. 다들 바쁘고,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새는 부분이 생기는 거였죠.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,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어도 좋으니 출장지에서도 간단히 기록할 수 있고, 업무 지시와 처리 이력이 자연스럽게 한곳에 모이는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구체화됐습니다. 가장 답답했던 순간은 분기별 보고서를 준비할 때였어요. 누가 언제 무슨 업무를 지시받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다시 짜 맞추느라, 정작 보고서 내용보다 자료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곤 했습니다. 매번 같은 패턴으로 시간을 허비하면서, 이 비효율을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.
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
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,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. 개발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, 요즘은 바이브 코딩으로 아이디어를 형태로 만들어볼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더라고요. Vercel과 Supabase를 활용해서 하나씩 기능을 붙여나갔고, 막히면 검색하고 다시 시도하기를 반복했습니다. 처음에는 과연 이게 제대로 된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, 직접 써보면서 하나씩 다듬다 보니 어느새 저희 팀이 실제로 사용하는 도구가 됐습니다.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게 아니라, 당장 불편한 것 하나씩 해결해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완성도가 쌓인 셈이에요. 이 경험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. 거대한 ERP가 못 채워주는 빈틈은, 의외로 그 빈틈을 가장 잘 아는 현장 사람이 직접 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. 그리고 이런 경험이 저희 회사만의 특수한 사정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. 비슷한 고민을 하는 중소기업이 분명 많을 테니까요. 그래서 김로지(ROZI)라는 이름으로, 이 경험과 앞으로 직접 써보고 배우는 AI 업무툴 이야기를 이 카테고리에 기록해보려고 합니다. 거창한 전문가의 조언이 아니라,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. 돌아보면 가장 큰 수확은 완성된 툴 자체보다, "이런 것도 직접 만들 수 있구나"라는 경험 그 자체였어요. 다음 글부터는 이 도구를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는지,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여준 AI 업무툴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.